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🇰🇷 South KoreaSouth Korea: 이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, 조선경비사관학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 1948년 9월 김종필의 8기부터 ‘육국사관학교’가 됐다

News summary
- 미 군정청이 ‘국방경비대’(국군의 전신)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한-미 간의 언어장벽이었다.
- 주로 옛 일본군·만주군 출신자들이 이 군사영어학교에서 영어 속성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했다.
- 초창기 육사는 교육 기간이 짧았다.
- 육사라고 불린 첫 기수인 8기와 9기의 교육 기간도 각각 22주, 23주에 불과했다.
한국 육군사관학교의 역사는 미 군정이 1945년 12월5일 설치한 ‘군사영어학교’에서 시작된다. 미 군정청이 ‘국방경비대’(국군의 전신)를 만들어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은 한-미 간의 언어장벽이었다. 주로 옛 일본군·만주군 출신자들이 이 군사영어학교에서 영어 속성교육을 받고 장교로 임관했다.
이후 남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, 조선경비사관학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다 1948년 9월 김종필의 8기부터 ‘육국사관학교’가 됐다. 초창기 육사는 교육 기간이 짧았다. 육사라고 불린 첫 기수인 8기와 9기의 교육 기간도 각각 22주, 23주에 불과했다.
1949년 선발된 10기(생도 1기)는 2년제로 입교했지만, 전쟁이 터지며 졸업도 못 하고 전선으로 끌려갔다. 1950년 6월1일 4년제로 처음 입학한 생도 2기의 운명은 더 가혹했다. 입교 24일 만에 전쟁을 만나 ‘생도’ 신분으로 전선에 배치됐다.
학생이 없어진 육사는 개전 사흘 만에 휴교에 돌입하게 된다. 그 뒤를 잇게 된 이들이 저 ‘유명한’(!) 전두환·노태우·정호용·김복동 등의 11기였다. 정부는 휴교 중인 육사를 1951년 10월31일 4년제 정규 과정으로 경상남도 진해에서 재개교한다는 ‘국본 일반명령 제163호’를 발표한다.
노태우 전 대통령은 2011년 펴낸 ‘회고록’에서 이 공고를 처음 발견한 당시 청년들의 달뜬 감정을 “1951년 초가을, 우리 젊은이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공고문이 게시됐다”는 짧은 문장에 담았다. 선배들이 모두 전쟁터에 끌려갔기 때문에 이들 위엔 아무도 없었다. 우리 군 내에 집단적 엘리트 의식과 과도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‘배타적 집단’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.
이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. 육군본부는 1955년 4월27일 군의 지난 역사와 단절할 수 없다며 정규 육사 1기를 ‘11기’로 부르기로 결정했다. 11기들은 “우리의 ‘명예와 자부심이 일시에 무너진 셈’이라며 펄쩍 뛰”며 “온 천지에 정규 1기생을 모집한다고 공포해놓고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은 정부가 사기를 친 것이나 다름없다”고 반발했다. 11기 백운택은 “만약 뜻을 이루지 못하면 배를 갈라 자결하겠다”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.
Source: Hankyoreh EN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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